[GLOBAL REPORT] 로보어드바이저 뜨자…美 자산관리시장 `지각변동`

September 2018

“미국 웰스매니지먼트(Wealth Management·자산관리)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년 내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머신러닝이 뒷받침된 `로보어드바이저`가 웬만한 자산관리 전문가들을 대체하겠지요. 결국 부유층 위주로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산관리 전문회사만 살아남을 겁니다.”
피터 황은 미국 자산관리 업계에서 몇 안 되는 한국계 고위 인사다. 삼성증권 뉴욕법인장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의 자산관리 부문 부사장을 역임하면서 한껏 주가를 높였던 그는 지난 8월 새 둥지를 틀었다.

스노든레인파트너스라는 자산관리 전문회사에서 아시아권 고객을 주로 담당하는 시니어 파트너를 맡게 된 것이다. 그는 최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매일경제와 만나 “4차 산업혁명 변혁기에 웰스매니지먼트 업계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발 빠른 변신을 꾀해야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 파트너는 “메릴린치,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소위 대형 투자은행에 속한 웰스매니지먼트 그룹이 주식, 채권, 원자재 등 모든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백화점식 영업이 조만간 한계를 드러낼 것으로 본다”며 “이미 이들 대형 금융회사에서 전문인력들이 이탈해 자산관리 전문회사를 차리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가 최근 합류한 스노든레인도 라일 라모스 메릴린치 전 웰스매니지먼트 사장 등 메릴린치 출신 고위 임원들이 2011년 설립한 회사다. 자산관리 시장에서 전문성과 영업력을 인정받은 10년 이상 경력자를 영입해 팀 단위로 자유롭게 성과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주로 상류층 고객들을 상대로 특화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주요 목표다. 황 파트너는 “한국에 있는 고액 자산가를 직접 유치할 수 있다는 것도 이 회사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스노든레인파트너스는 독특한 회계 구조를 갖고 있다. 고객들로부터 위임받은 투자금은 자사 계정이 아닌 뱅크오브뉴욕(BNY)멜론에 보관돼 회사 자산과 고객 자산이 엄격히 구분된다.
또한 `금융 플랫폼`을 갖추고 여러 금융기관의 상품을 한꺼번에 취급하는 게 특징이다. 황 파트너는 “특정 금융회사에 속해 있는 웰스매니지먼트그룹은 그 회사의 금융상품을 주로 취급해야 하지만 독립 전문회사는 가장 경쟁력 있는 상품을 골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수익 구조도 한층 유리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그가 메릴린치에 속해 있을 때는 고객에게 채권상품을 추천하면 메릴린치 채권팀이 수수료 수익의 일정 부분을 챙겨갔다. 자산관리 전문회사는 시장에서 바로 채권을 거래하기 때문에 중간 마진을 아낄 수 있다.
또한 대형 금융회사보다 자산관리 전문가들에게 돌아가는 인센티브가 한층 많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이익의 파이가 더 할당될 여지가 생긴다고 황 파트너는 언급했다. 메릴린치, JP모건 등 거대 금융기관은 고객이 자신의 돈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브랜드 가치가 무기라면 신생 자산관리 회사는 빠른 의사결정과 낮은 수수료를 앞세울 수 있다는 얘기다.
황 파트너는 “로보어드바이저의 장점 중 하나가 낮은 수수료인 만큼 AI 시대에 대비하려면 수익 배분 구조를 단순화하고 인력과 투자 정보를 효율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사업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개 자산관리 업계에서는 고객 운용자산의 1% 정도를 연수수료로 부과해왔는데 로보어드바이저 확산이 수수료 인하 경쟁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미국 온라인 특화 금융회사인 찰스슈와브는 올해 3월 인간과 로보어드바이저를 결합한 하이브리드형 자산관리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활용해 로보어드바이저가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 등 투자 포트폴리오를 자동으로 설계해주면 투자 상담사가 이를 고객과 연결해주는 형태다.
이에 앞서 미국 온라인 자산관리업체인 베터먼트도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하는 하이브리드 서비스를 개시했다. 이 같은 `자산관리 자동화-저렴한 수수료` 추세에 기존 대형 금융회사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황 파트너는 “자산관리 시장에서 고액 자산가들 위주로 전문가들이 직접 상대하고 소액을 맡기는 중산층 이하 고객들은 조만간 로보어드바이저가 응대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부유층 자산가들은 자녀 상속 등 각종 세금 문제를 비롯해 보다 정교한 투자 포트폴리오에 대해 자문하기 때문에 이 영역까지 AI가 쉽게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모바일과 AI 흐름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가 수수료 부담이 작은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더욱 선호할 것이며, 은퇴를 앞두고 있는 50대나 이미 은퇴한 60·70대도 퇴직연금 관리를 위해 로보어드바이저에 의존할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미국의 은퇴자산 관리 전문 로보어드바이저 기업인 유나이티드인컴은 50~70대 고객을 겨냥한 자산관리 서비스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황 파트너는 “고객 자산관리 자금의 흐름이 대형 금융회사에서 독립·전문회사로 빠져나가는 흐름이 보인다”며 “앞으로 이런 추세는 더욱 빨라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시장조사업체인 세룰리 어소시에이츠는 수년 내로 대형 자산관리회사에 속한 투자 자문사의 4분의 1가량이 이탈해 독립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이들 회사의 개수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자료를 인용해 미 투자자문회사가 2002년 750개에서 2017년 3900개로 부쩍 늘어났다고 전했다.
미 자산관리 업계에 다행인 점은 전체 시장 파이가 계속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산관리·자문회사들의 운
용자산은 올 3월 기준으로 5조5000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2002년과 비교해 거의 6배 수준이다. 로저 하비 피델리티 자산관리 부문 수석부사장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자산관리와 자문 서비스에 대한 고객들의 욕구가 커지면서 이 시장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는 상당수 개인들이 재테크 수단을 귀동냥해 본인이 직접 하는 게 유행이었다면 이제는 투자 전문가들의 도움을 원하는 개인이 많아진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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